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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장소를 점유하는 일을 오늘날 어떤 의미와 방향으로 설정해야 할 것인가. 팬데믹 이후 인적·물적 자원이 도시로 치우치는 현상은 점유된 공간의 한계를 드러낸다. 팬데믹은 삶의 위험성과 취약성이 도시 곳곳에서 나타내는 현실적 계기가 되었고, 재난은 약한 자에게 가장 먼저 찾아왔다.

 

팬데믹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전 국민이 영업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고,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자그마한 공원은 접근금지 테이프로 입장이 제한된다. 그나마 가슴을 뻥 뚫리게 할 강변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약간 냉소적일 수도 있지만,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곳이나 생산기능이 저하된 곳(공백-보이드)은 도심 내에서 가장 먼저 차단된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차리게 된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경고는 도시라는 공간과 장소에 특정한 공백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상품 기능이 저하된 곳은 가장 먼저 차단·폐쇄되기에, 공공시설은 가장 먼저 출입이 제한된다. 도시 안에서 공공성을 시험받지 않는 장소는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공공성을 통해 안전망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기능 없이 존재하는 공공성의 의미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그곳의 유보를 묵인한다. 노동과 생산 기능이 최우선에 놓이고, 각 공간의 쓸모 유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공공성과 공동성을 그에 용이한 방식으로 귀속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기능의 의미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규정되는 생산성 외에도 우리에게는 유예되어서는 안 될 가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마저 국가 행정이 주도하는 담론 및 자본화된 가치와 동일시될 때, 자본의 논리 구조에서 탈각된 존재들은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당하게 된다. 소유를 통해 보장받지 못한 최소한의 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기반이 부재한다. 소유를 사유해야지만 확보되는 사적 공간은 부재하고 공공 영역에서 공적 공간이 일괄 폐쇄되는 현상은 또 다른 격차, 장소 간의 격차를 만들어 낸다. 오드라데크Odradek는 이러한 격차 사이로 드러나는 공백-보이드로부터 등장한다. 오드라데크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가장의 근심」에서 미지의 것으로 등장한다.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없고 납작한 별 모양의 실타래처럼 생겼기는 하나 그 쓰임이나 용도가 모호하다.

오드라데크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로도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마주하는 가장(家長)은 근심에 휩싸인 채 그저 오드라데크라는 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 간신히 이해할 뿐이다. 제한된 공간과 통제된 의미로 한정되지 않는 오드라데크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해석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된다. 오드라데크의 거주지는 정해진 질서와 체계에서 포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범주의 재목록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오드라데크가 발현할 곳은 쓸모없는 공간과 장소이기에, 쓸모라는 가치를 통해서는 그것(Object)의 형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드라데크는 쓰임이 다하고 의미가 텅 빈 채로 거리를 굴러다니는 쓰레기와 닮아 있다. 도시가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을 선별하고 처리하는 과정은 상품이 쓰레기를 가려내는 과정과 유사하다. 오늘날 도시 안에서 효율과 기능이 저하된 곳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고, 생산성 여부에 따라 도심이 확장할수록 지역 소외 현상은 심각해진다.


쓸모 경쟁에서 밀려나 휴지기가 사라지고, 사람이 사라지는 지역엔 도시에서 밀려 나온 쓰레기가 자리 잡는다. [쓸모 없음]은 곧장 쓰레기로 치환되어 주거권이 말소된다. 도시는 쓰레기를 위한 자리는 남겨두지 않는 방어도시가 되어, 상품에 깃들어 있던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를 가린다. 오드라데크는 바로 그곳, 쓰레기가 쫓겨난 자리, 공백-보이드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오드라데크는 생산성과 쓸모에 따른 개발로 인해 자신의 장소에서 밀려 나갈 때 존재를 드러낸다. 오드라데크가 범주를 벗어난 이질성으로서 포착될 때, 우리는 그동안 포착되지 않던 공백-보이드를 발견할 실마리를 얻는다. 오드라데크가 출몰하는 보이드는 예술의 장소이자, 자본의 가치체계를 벗어난 욕망을 생성하는 공간이다. 무쓸모하거나 추한 것은 욕망의 대상에서 벗어나기에 소유의 관계망에 들어갈 수 없는데, 거의 모든 공간과 장소가 생산에 따른 자본이 개입하는 시대에 이 말은 곧, 자본이 욕망할만한 가치가 아니라면 사회 안에 있을 자리가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 쓰레기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은 소유의 기존 논리를 역행한다. 쓰레기와 추를 이용하는 보이드의 점유는 쓸모와 존재를 연결하는 기존 질서의 작동 방식을 부분적으로 끊고 무효화하기 위한 오드라데크의 전략이다. 오드라데크의 공간은 쓰레기의 잠재터로서 자유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본 전시는 쓸모와 기능으로 점유되는 공간의 한계와 무쓸모와 추를 통한 오드라데크의 출몰을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본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방법을 모색한다. 기획. 강정아

제9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


전시기간: 2022년 3월 11일(금)-4월 7일(목)
기획: 강정아
참여작가: 노드 트리, 봄로야, 우희서, 오선영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6시_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아마도예술공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4길8)
연구자: 강병우, 민주
디자인: 파이카

The 9th Amado Exhibition Award

《No fixed abode: Odradek》

period: 11 March 2022-7 April 2022
curator: JungAh Kang
artists: NODE TREE, BomRoya, HeeSeo Woo, Sun Oh
time: Tuesday-Sunday 11:00am-6:00pm
venue: Amado Art Space

(Itaewonno 54-gil 8, Yongsan-gu, Seoul, Korea)
collaborator: ByungWoo Kang, Minnju
design: Pa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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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트리 <땡볕, 초승달과 대추>
그물망, 베어링, 라쳇 렌치,각종 고철, 비닐, PET, LED, MCU, 스피커, 배지,표고버섯, 모래꽃이끼_가변설치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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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트리 <복합돌봄장치-주식회사 생산소>
유리병, 비닐끈,PET, 빨대, 프로펠러, 구슬, 기어드 모터, D/C 모터, 전선,글리세린, 물, 핀 조명_가변설치_2022(기술협업_김정기 / 제작도움_생산소(이상철, 이헌철))

노드 트리(이화영, 정강현)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 거주하며 신도시들이 복사하듯 만들어지는 현상에 관심을 두며 산업과 삶의 속도가 빨라지게 된 풍경의 서사에 주목한다. 2020년 도시를 떠나 충청남도 부여로 이주하여 표고, 수박 등 지역 내 특산물로 유명한 농장에서 일꾼으로 경험을 쌓는다. 오드라데크는 가장(家長)의 통제가 강하게 작용되고 소유와 사유에 개입이 일어날 때 보이드를 개시한다. 노드 트리가 작업의 단초로 채집하고 수집하는 관계성은 소유 공간의 보이드를 개시하는 객체들인 것이다. 이방인이 터를 잡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은 이에 따른 부산물(잔해 더미에서 온 강철, 버려진 무대세트 일부, 비닐 하우스에서 온 스텐철사 등)을 자아내고 조형으로 재탄생된다. 부여에서 관계 맺은 농부와 장인을 작품에 개입시키고 수집된 객체의 기능과 쓸모 유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도록 둔다. 이들의 개입으로 인해 작품은 유연하고 우발성을 발생시키며 그 자체로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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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_<Paludarium>
퍼포먼스_00:30:00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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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 <Terrarium>
단채널 영상, 혼합재료_00:40:00_2021

오선영은 한국과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사람과 상황, 관계와 행위에 따른 이중성과 그 틈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설치 작업, 퍼포먼스를 통해 구현한다. 분노, 슬픔, 폭력, 상실을 표현할 때 불안의 몸은 작가의 중요한 매개체이다. 오드라데크의 '죽지 않는 것'이라는 불사성(不死性)은 의미와 목적이 닿는 데 실패함에 기인하기에 그러므로 인간의 눈에 오드라데크의 내부는 텅 빈 채로 있다. 오드라데크가 사멸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깨달은 것은 사멸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고통이다. 오선영의 「Terrarium」(2021)과 신작 「Paludarium」(2022)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죽지 않는 것과 살아있지 않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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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봄로야 <서로 우는 밤>
캔버스에 혼합재료_14.8×14.8cm×4_2022
(좌) 봄로야 <자연 초과>
종이에 혼합재료_35×27.5cm×4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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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로야 <가난한 천이>
단채널 영상_00:05:32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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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로야 <유연한 손>
단채널 영상_00:13:00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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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봄로야 <유연한 손>
캔버스에 혼합재료_46.8×36.8cm×3_2021~2
(우) 봄로야 <유연한 손>
캔버스에 혼합재료_15.8×22.7cm×2_2022

봄로야는 드로잉, 텍스트, 영상을 기반으로 서사를 구축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인간이 가공한 도시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해관계와 그에 따른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안전을 위시하며 이분법으로 구분 짓는 경계를 지자체로 삼아 매끈한 표면을 유지하기 위해 잘려 나간 존재를 기록한다. 작가는 그린벨트로 지정된 서울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 경계에서 점유를 둘러싼 욕망에서 빗겨나간 존재에 눈길을 보낸다. 자본의 논리에서 혐오의 폭력성은 개발과 생산, 안전에 따라 설득되고 상식과 보편이란 이름으로 묵인된다. 도시 경계의 가장자리는 언어로 설명하기 모호한 이름 없는 더미를 쌓아둔 채 방치한다. 작가는 저마다의 욕망과 이해관계로 입장을 고수한 긴장감과 그 간극을 묘하게 넘나드는 미약한 존재를 지도의 중심에 아로새긴다. 그것은 오드라데크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근심 어린 눈으로 응시하는 가장(家長)의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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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서 <Bad breath - 탐지도구 1,2,3>
호박, 모바일폰, 아크릴, 헤드셋_가변설치_2022

우희서의 신작 「Bad breath」(2022)는 작가가 객체 간의 관계 상상력을 동원하여 실현한 '추의 점유' 전략 중 하나로 충청남도 부여에 이름 모를 땅을 탈취한 경험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것은 자본과 기능으로 점유하는 공간을 패러디하며 공간의 음영화를 만드는 오드라데크의 전략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시장에 작품을 '비어있음'으로 공존시키며 관람자가 오드라데크의 경로를 추적하도록 유도한다. 오드라데크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은 약속된 기능을 저버리고 무정형으로 뻗어가기에 작가가 제안한 '탐지 도구'는 작품의 동선을 유도하지만, 이것은 작품을 관람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관람자는 작가의 의도를 유추하고 작품의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자리만 좇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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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라데크O(b)dradek: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강정아, 김민주, 강병우, 최희진, 봄로야, 유지완_히스테리안 출판사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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