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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命하다 ○ 유은

작성자 사진: hysterianpublichysterianpublic

최종 수정일: 2024년 11월 11일







이야기를 찾습니다

나를 구원해주세요

자유롭게 해주세요


아아 그런 건 없어요


마녀와 무당의 몸

널브러진 그녀의 조각보를

하나둘 수집합니다


바느질을 배워둘 걸 그랬어요

지금에라도 재봉을 배워야 할까요


받아쓰는 몸은 따로 있는 걸까요


문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요


땅은 나를 끌


머리는

__ 아

아 래

래 로

로 __


사라진 씨앗을 찾아요

사라진 약초를 찾아요

혹은 독초를


웅녀를 만날 수 있을까요


버려진 아이가 길을 짜요

길을 잃어요

지도에는 없는 이야기


방언들이 난잡하게 난무해요


무슨말을하는거예요

모르겠어요고개를끄덕여요



 

바퀴벌레 몸에 풍류가 깃든다

숨구멍 귓구멍 눈구멍 입구멍 똥구멍 그리고

이름 없는 구멍들을 타고 흐르는 풍류에 잔가지들이 일렁일렁 출렁출렁 미물의 몸을 맡긴다

환웅과 단군이 환희의 웃음을 보이는 찰나

웅녀가 남긴 팔십구일 사이에 피어나는 현묘한 그늘

아니, 현묘의 직전 명명하지 않은 검은 춤사위


줄기와 더듬이와 다리와 촉수

껍질과 털과 날개와 지느러미


푸—--------우


네가 날개를 펼친다. 너의 구멍에서

흰 털 한 올 비죽

솟아난다 부르르


귓바퀴를 타고 귓구멍으로 고막으로 파고든다 진동한다

착상한다 뿌리내린다 지그시 으레 스스로 그러하게

미물에서 미물로 물에서 물로.


고막 밖으로 지느러미가 안으로 날개가 흘러나온다



 


“점점 말을 안 하게 된다”는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발화와 행위 사이의 시차는 나날이 벌어진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이 잦아드는 사이, 채비를 마친 귀가 자리를 잡고 귓바퀴를 굴린다. 말 아닌 말, 소리 아닌 소리들이 고막을 둥둥 울리고 빙글빙글 통로를 따라가서는 아주 작고 미세한 돌기들 틈에 머문다. 듣는 귀의 한 구석에서는 아주 느린 속도로 말을 전하는 전달자/매개자 혹은 시(poet)하는 화자의 털이 깃든다. 자라난다. 청자이자 화자, 수신자이자 발신자가 된 육체 곳곳에 오해와 선해 사이를 오가며 공명하는 울림은 끝없이 지연되고 유지된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외롭고 불편한 것”을 선택한다는 말에 새로이 고개를 끄덕인다. 바리데기1)는 버려짐과 희생, 그리고 무巫로의 회귀라는 세 차례의 “죽음 여행”2)을 한다. 딸로 탄생한 몸은 금세 이름을 잃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음으로 존재한다. 딸/아내/어미로서 감내해야 했던 노동으로부터 목소리를 상실한다. 잃음-않기와 상실로부터 ‘홀로-없음’의 상태를 경험한다. 미분화未分化된 듯한 섬모들의 군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섬모의 돌기는 미분微分되어 제각기 다른 모양의 고독과 소화불량에서 일어나는 춤사위로부터 서로를 알아차리며 절대적 보편자, 고정된 주체성을 뒤흔든다. 


다문 입속에 숨은 혀의 운동성, 입을 열고 뻐끔거리는 움직임에 반응하는 혀의 머뭇거림, 다시 닫히는 입술 틈으로 새어 나오는 혀의 소리. 그것의 망설임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흩어지는지.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사라지고, 오해와 선해, 갱생과 갱신이 생성되는지. ‘나’는 그 역동 사이 어딘가에 놓이고 머물고 이동하고 이주하고 사라지고.


검은머리긴머리삭발탈색머리털만그래?온몸이그래.밀어도밀어도다시털이자라.색을빼도빼도검은털은자라나.달거리를하듯그녀의몸에서는붉은피와검은머리가손톱과발톱나듯자라나.검은머리가날때마나언제이털들이흰머리가될까언제얼굴에주름과검버섯이뒤덮일까.익명성에감춰질얼굴아무도알아차리지못할노인의얼굴이되기를고대하며앞서가는시간을그리며.사라짐을갈망하는날.동쪽에서태어나동쪽에서죽은몸들.욕망을달랠길이없어죽음을갈망하는날.죽어마땅한몸이있을까.생옆에앞에뒤에사가겹쳐있으니살아마땅한몸은동시에죽어마땅하다.너의죽음을기리는만큼기꺼이나의몸을함께뉘이며눈을감고.뜨지않는뜨지않아도되는눈의영광.


 

명命


  • 1. 목숨, 생명生命, 수명壽命

  • 2. 운수運數, 운運

  • 3. 표적標的, 목표물目標物

  • 4. 명령命令, 분부分付ㆍ吩咐

  • 5. 성질性質, 천성天性

  • 6. , 언약言約

  • 7. 규정規定, 규칙規則

  • 8. 가르침

  • 9. 작위爵位, 작위(爵位의 사령서나 그 신표信標: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 10. 하늘의 뜻, 천명(天命

  • 11. 도道, 자연自然의 이법(理法

  • 12. 호적戶籍

  • 13. 명령命令하다

  • 14. 가르치다, 알리다

  • 15. 이름 짓다, 이름을 붙이다


 

아이였던 그녀는 앓는 어머니를 위한 약을 구해 돌아가던 차에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납니다. 여인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습니다. 그러고는 그녀가 지닌 바구니에서 주머니를 하나하나 풀어 보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새로 살펴줍니다. “열 번째 주머니와 그릇”은 선물이라며 함께 건넵니다. “멈추지 말고 그녀가 일러준 것을 모두 기억하라” 며 그녀는 새로운 약과 선물을 담은 보퉁이를 그녀의 손에 쥐여줍니다. 그녀는 우물가를 떠나고, 그녀는 그녀의 말과 온기를 느끼며 집으로 향합니다.3)


그녀는 현재 그녀의 몸이어서 겪어야 하는 수난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한가운데에 있는 자는 수난의 명이 언제 다할지, 거기서 자신의 도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명명할지 살필 여유가 없습니다. 징징대는 줄도 모르게 흐느끼는 말들이 줄줄 밖으로 새어 나갑니다. 


그녀와 만난 날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어느덧 희미해진 기억만이 자리합니다. 우물가에 서 있던 여자의 형상은 이제 실루엣만 자리합니다. 자꾸만 희미하게, 희끗하게. 희끗하다 못해 투명해져 갑니다.


 

2020년 11월 한겨레신문의 젠더미디어 유튜브 채널 ‘슬랩 slap’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용한 학살’로 명명된 청년여성의 자살 증가 현상은 2023년 5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간 한국의 자살률이 감소하다가 2018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한 현상에 주목하면서, 청년여성의 높은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남성의 자살률은 증가하지 않았다.4)


지금 청년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페미니즘 담론5)의 확산과 그에 따른 개인화된 생애 전망 속에서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성차별적 구조로 인해 독립된 1인 가구로서의 삶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 자리한다(이소진, 177).


삶에 도사리는 위험 관리에 대한 부담감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존재론적 불안으로 확장된다. 사회 자체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띠는 상황에서, 각 개인들은 존재론적 불안에 놓일 수밖에 없다(이소진, 160-1).


통제 중재노동 

배치저숙련절하태움

불안존재론적 불안

치료 범람 유예 회피

허구


 

여자들이 사라집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숙련되지 못하고 속하지 못하던 그녀는 여기에 속하지 않기를 택합니다. 태움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먼저 태우기로 합니다. 친족으로부터 시장으로부터 여기로부터 최대한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사라지는 그녀들, 아직 남은 그녀들 그 사이를 오가는 사유와 행위들 멸에 가까운 생은 회귀를 향하지 않는 듯합니다. 일생이 부디 一生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희끄무레한 이야기. 희미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희미한 촉감으로 희미한 연기로만 가늠하며 찰나의 연결이 가능한.


명줄을 더듬듯 더듬더듬 말을 이어갑니다. 말줄임표 사이사이에 잊었던 기억과 온기가 다시 새로이 자리할 뜸을 들입니다. 아직 날숨으로조차 나오지 못한 말들. 이 세계의 모양을 짐작해 볼 새 없이 현기증이 입니다. 만신이 되기에는 갈 날이 멀고 멉니다. 좋은 이웃이라도 되면 다행입니다. 


독백이 난무합니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마땅한 도리에 관해 묻습니다. 말이 안 되는 말들 변방의 골짜기에서 퍼지는 파장의 말들을 상상합니다. 기울입니다. 구부립니다. 웅크립니다. 무언가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콜센터 어린이집 커피숍 편집실 골프장 바깥에서 바깥으로, 임시로 마련한 거처를 지나 다시 바깥으로, 여기 끝에서 저기 끝으로. 바깥의 끝을 시작점 삼아 선을 그립니다. 아주 가느다랗고 연약한 실들이 쌓이고 짜여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기를.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그 후의 죽음을 맞이하도록. 버려진 아이를 보살핀 노인. 망자를 천도하는 물과 꽃. 끄트머리 곁을 서성이는 자의 구부린 몸. 


저승으로 향하는 여정에 자리한 주변의 주변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아이 노인 망자 물 꽃 끄트머리. 


 

후기

‘한국’적인 것에 대해 의식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한 개인의 일상과 주변을 살피고 작업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다 뒤늦게서야 제가 동아시아 한국에서 자라난 여성의 몸으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여기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음을 재확인하기도 합니다.


기억에 남은 장면 곳곳에는 ‘한국’적 가부장제, 그러니까 능력주의에 기반한 인정과 방치, 통제, 폭력 기제가 알게 모르게 스며 있습니다. 이제서야 그때의 그것이 내가 딸이어서 여자 동생이어서 여자 학생이어서 어린 여자여서 발생했던 사건들이었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당시의 한국이었기에, 지금의 한국이기에 생겨나는 구조적 차별과 폭력임을요. 


잠시 우회로를 찾아 ‘히스테리안 리서치 클럽’ 참여자분들과 함께 풍류와 한, 신명 등에 관한 공부를 하였습니다. 오래 묵은 기호들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읽어보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곧잘 길을 잃곤 했습니다. 동시에 함께 등대를 만들고 새로이 등불을 밝혀가는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단어들의 한국적 함의를 여러 방식으로 따라가다 그것이 정말 ‘한국’에만 있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단어의 연원과 정동의 역사문화적 흐름을 따라가다가 민족주의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지 경계심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특수자를 찾다 차이에 기반한 보편자를 잃거나 또 다른 소외를 낳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한국,’ 좀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주변을 살피고자 했던 문제의식으로요. 동아시아 한국 여성으로서 자신이 자리한 정치생태적 지형에 대한 언어를 되찾고자 했던 그때로요. 


바리데기 신화로부터 한국/동아시아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 보고자 했습니다. 김혜순 시인의 텍스트와 여성문학연구 학술 저널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작년에 접한 김지승 작가님의 여성적 글쓰기/읽기에 관한 강의 “메두사의 웃음으로-여성적 글쓰기는 가능한가”와 올해 초부터 함께 해온 AFSAR(Asia Feminist Studio for Art and Research) 시살롱(SiSalon) 모임은  ‘여성 서사’ 혹은 ‘서사의 여성화’에 관한 다층적인 사유와 실천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한편, 쉽게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접근과 제가 자리한 곳에서의 감각을 어떻게 단단하게 묶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감을 잡지 못하던 차에 친구 제인이 제게 『한국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에 관한 연구』 서적을 건네준 건 뜻밖의 필연이었습니다. 


많은 동시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끊는 것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는 최근 보도와 연구자료들을 살핍니다.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존재”와 “불안”이라는 두 단어가 함께 놓여 이룬 “존재론적 불안”이라는 활자를 마주하며 자욱한 연기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감각이 서늘하게 스밉니다. 자살률 1위라는 말이 이곳에 너무 만연해서 대북 현안을 접하듯 안일하게 냉소를 짓곤 했습니다. 죽음이 너무 옆에 있어 도리어 옹송그린 채 너무나도 한국적인 그 죽음들을 외면해 온 게 아닌가 합니다. 죽음들 앞에서 참담하고 시끌한 침묵 외에 무엇을 더 행할 수 있을지. 


찾아들었던 지친 마음이 잦아듭니다. 제인이 책에 남긴 밑줄과 메모, 색인 스티커를 따라가다 저를 통과하는 이야기들을 담아 듣습니다. 그 가운데 남겨진 것들을 한 자 한 자 모아 옮겨 적습니다. 


바리데기는  혹은 어떻게 여러 차례의 버려짐과 억압, 수난에도 불구하고 다시 속세로 돌아온 걸까, 회귀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찾고 싶었습니다. 바리데기 서사의 세 번째 죽음 여행의 화자를 선망했습니다. 이제는 그 자리에서 화자의 혀가 부드럽게 풀리는 순간은 아주 잠시 깃들고 지나가는 찰나임을 느낍니다. 첫 번째 죽음도 두 번째 죽음도 아닌, 필멸의 순간을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곳을 헤매는 날들이 생의 대부분을 이룰 것임을 눅눅한 피부 안팎으로 감각합니다.


땅에 붙박인 몸이 찰나를 부여잡고자 합니다. 하늘의 길을 떠올립니다. 망자의 천도. 글을 쓰며 떠올린 얼굴과 몸들, 글을 마주하는 분들 일상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안녕하기를. ●




 

미주

1) 김신정에 의하면, 신화는 ‘기원’에 대한 해석이자 상상이다. 무속신화에서는 수난과 극복, 신으로의 좌정 서사가 이어지며 인간의 탄생과 삶, 죽음에 대한 고찰이 존재한다. 김신정은 무속신화 속 여성들이 ‘몸’ 수난을 겪는다는 특이점에 주목한다. 바리데기 서사 또한 여성 몸에 대한 가부장제적 구속, 여성 주제의 자기 몸 인식, 생명력과 포용력으로 세계 내 재위치하는 만신으로의 좌정 서사로 살펴볼 수 있다(김신정, 「무속신화와 여성의 몸」,  『여성문학연구』 no.27,  2012, 35-56쪽 참고). 

2) 김혜순은 바리데기 서사를 세 번의 “죽음”으로 나누며 각각에서 “죽음 여행의 시”를 읊는 화자의 말모양을 살핀다. 첫 번째 죽음 여행에서 화자는 딸이어서 버려진 소녀이자 미성숙한 화자이다. 화자는 외부로부터 찾아든 피동적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일상적 수난을  “징징”거린다.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화자는 성숙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이승에서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저승에서는 결혼과 양육,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 구속을 감내하며 사회 내 자신의 위치를 감각한다. 세 번째 죽음 여행에서 말하는 자는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사이’의 틈을 벌린다. 그녀는 “넘나드는 자”로서 기존 언어의 문법,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뒤흔드는 “분자화된 언술”, “복수성”을 내포하는 “공동의 말하기”를 수행한다김혜순, 「쓰레기와 유령」, 『여성, 시하다』, 문학과지성사, 2018, 21-41쪽 참고).

3)  테레사 학경 차, 김경년 옮김, 「폴림니아 성시」, 『딕테 DICTEE』,  어문각, 2004, 181-187쪽 참고.

4)  이소진,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오월의봄, 2023), 11-12쪽.

5)  이소진은 한국의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연애와 결혼의 거부를 동반한 능력주의적 지향을 제시한다는 지적”을 언급한다. “한국 여성들의 ‘성공’은 성평등한 파트너 관계나 훌륭한 어머니 되기와는 무관하게 오히려 이성애적 관계 및 남성에 대한 배제 속에서 의미화된다.” 이에 한국 청년여성들은 과거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한다. “노동영역”에 한정해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다. 여성 노동의 평가절하가 노동가치, 인력배치 등 사회 전반에 만연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청년 여성의 노동 위험은 그들의 존재론적 불안, 나아가 자살생각으로 이어지게 한다(위의 책, 172쪽 참고). 


참고문헌

-김혜순. 여성, 시하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8.

-이소진.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파주: 오월의 봄, 2023

-테레사 학경 차. 딕테 DICTEE. 김경년 역. 파주: 어문각, 2004.

-김신정. “무속신화와 여성의 몸”, 여성문학연구 no.27(2012) : 33-56.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슬랩slap. 2020년 11월 12일. 동영상. 10:52. https://youtu.be/qyXWtE7Osrg?si=xZiirpmboQeVKSRt (최종검색일: 2024년 9월 11일)

-“South Korea’s suicide rate fell for years. Women are driving it up again.” The Economist. 2023년 5월 22일. https://www.economist.com/graphic-detail/2023/05/22/south-koreas-suicide-rate-fell-for-years-women-are-driving-it-up-again (최종검색일: 2024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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